“나는 99% 실패했고 성공한 건 1%에 불과하다.” - 로버트 레코프위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만,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성공한다는 의미로 알고 계신 분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실패를 통한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냥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배울 점을 찾아 다음 시도에선 조금씩 더 성공에 가까운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다른 사람의 실패를 통해 뭔가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시도했다 실패한 프로젝트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비슷한 방향의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시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실패 확률을 줄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소개해 드릴 저의 프로젝트는 ‘양대리와 펭사장’ 이모티콘이에요.
이모티콘 ‘양대리와 펭사장’
굿즈 상품이 아니라 의아하실 수 있는데요. 굿즈와 이모티콘 모두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이면서 동시에 고객들의 ‘사용성’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리고 결과물의 형태는 다르지만, 만드는 과정은 사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양대리와 펭사장은 제가 아주 큰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만들었던 이모티콘이었지만 제대로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했던 프로젝트예요.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이모티콘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 알려드리기 위해서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려고 해요.
1차 시도! 멸망프렌즈?
처음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일러스트와 인스타툰
‘양대리와 펭사장’은 처음에는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제목은 ‘멸망 프렌즈’였어요. 이 작업을 할 때쯤 저는 취업도 안 되고 주변 상황도 안 풀리고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너무 힘들던 시기였어요. 그때의 생각이나 일어난 일들을 하나씩 일러스트로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던 것 같은데 좋아요가 많이 찍힌다고 생각했어요. ‘아 다들 우울한 시기라서 이런 일러스트에 공감도 많이 하는구나!’ 느꼈고 무작정 이모티콘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름으로 열심히 만들었지만, 승인도 되지 못했어요. 이모티콘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고, 사용성에 대한 고려도 부족했으며, 캐릭터도 매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첫 미승인 이모티콘 ‘멸망 프렌즈’
사람으로 실패하고 고양이로!
사람에서 고양이로 변해가는 과정
사람 대신 고양이로 캐릭터를 바꿔갔어요. 형태적으로도 더 귀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모티콘으로써 감정 이입도 훨씬 나을 것 같았어요. 옷을 입은 고양이로 시작하여, 넥타이를 맨 고양이로 조금씩 바꿔갔어요. 하다 보니 제 일러스트 실력도 함께 성장해서 캐릭터의 완성도도 조금씩 높아졌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를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동시에 이모티콘도 만들어 나갔어요.
몇 달 동안 고생을 해서 결국 출시를 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판매량이 정말 안 좋았어요. 이모티콘을 만들기까지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열심히 노력했는데, 지금이야 담담하게 ‘속상합니다’ 정도로 쓰지만 그때 당시엔 정말 힘들었어요. 이 이모티콘은 왜 실패했을까요? 몇 년이 지나서 다시 보니 이유가 보이는 것 같아요. 바로 ‘제가 하고 싶은 말’만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에요.
실패 이유 -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너무 많이!
사람들이 그래픽이 들어간 옷을 입고 카톡방에서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것은 ‘고객 자신의’ 감성, 감정, 혹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기 위해서예요. 그리고 상품을 통해 고객의 생각을 표현하려면 반드시 ‘여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한글 문구를 프린팅한 두 개의 티셔츠를 만든다고 해볼게요. 첫 번째 티셔츠는 심플하게 ‘평화’라는 단어를 프린팅한 티셔츠고, 두 번째 티셔츠는 ‘세계평화를 기원합니다’라는 문구를 프린팅한 티셔츠예요.
실제 판매 중인 티셔츠는 아닙니다.
어떤 티셔츠를 사람들이 더 많이 좋아할까요? 저는 ‘평화’만 프린팅한 쪽이 훨씬 많은 사람이 좋아할 거로 생각해요. 점점 심플한 것을 찾는 추세이기도 하지만 ‘세계 평화를 기원합니다.’라는 문장은 너무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고객들의 이야기가 들어갈 여백이 없어요. 정말로 문구 그대로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이 아니면 사용하기 어려운 상품이에요.
반면에 ‘평화’라는 단어만 프린팅한 티셔츠는 매우 많은 여백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면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 가족이나 주변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 ‘평화’라는 단어가 그냥 좋은 사람, ‘평화’가 싫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 상품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제 이모티콘도 마찬가지로 너무 여백이 없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담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우울한(1) 직장인이지만(2) 열심히 살아가는(3)’이라는 너무나도 구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그 캐릭터가 이모티콘에서 하는 행동이나 상황표현조차도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여백’이 거의 사라져서 고객이 공감하기 힘들고 사용하기도 어려운 이모티콘이 되었어요. 차라리 설정을 조금 덜어내 ‘우울한 고양이’, ‘정신 나간 펭귄’ 같이 심플하게 캐릭터를 만들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쓰는 이모티콘을 보면 흔히들 ‘대충 그렸다’라고 생각될 정도로 뭉개진 형태의 캐릭터가 많은데요. 저는 그런 부분이 어쩌면 ‘여백’이 있는 형태의 좋은 디자인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캐릭터의 인상이 또렷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은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해서 사용할 수 있어요. 반면에 제가 만든 캐릭터는 너무 형태와 인상이 또렷해 여백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결론
굿즈나 이모티콘을 팔기 위해선 작가가 아닌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둘의 차이는 자기 이야기를 하느냐, 고객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대신 표현해주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보단 고객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어야 해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 상품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지 잘 파악해야 해요. 그렇게 해야 정말로 팔리는 상품을 만들 수 있어요.
크리에이터 양진
웹디자인, 일러스트, 타이포그래피, 폰트, 이모티콘, NFT까지 다채롭게 선보이고 있는 디자이너이자 작가입니다.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있다면 오라운드에서 양진 작가의 작품을 한 번은 만났을 거예요. 직장인의 애환 속에 담은 위트 한 스푼! 양진 작가의 작품은 고된 일상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양진 작가의 아트워크가 궁금하다면 지금 그라운드로 바로 가기!